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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의 향기] [해인지] 정체正體를 결정決定하는 행위行爲 - 2012년 4월호
글쓴이 : 희랑대 날짜 : 2012-05-24 (목) 08:50 조회 : 2393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 Sutta Nipāta에서의 '태생胎生에 의해서 바라문婆羅門이 되거나, 혹은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行爲로 인해서 바라문인 자가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서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다.' '출생出生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십시오.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는 것처럼 비천卑賤한 가문家門에서도 지혜로운 성자聖者나 고귀高貴하고 부끄러움으로 자제自制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라는 설명은 신분身分이나 정체를 결정하는 조건은 가문이나 직위職位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로 좌우左右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숫타니파타가 설해지던 당시의 사회 구조에서는 바라문이 왕족王族보다 높은 계급이었으며, 이러한 신분계급은 세습世襲에 의한 것으로 왕족이나 평민으로서는 바라문의 계급에 유입될 수 없는 특권층으로 여타餘他의 신분에서는 감히 넘보거나 꿈꿀 수 없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성원은 바라문과 바라문이 아닌 자 등으로 양분兩分되어, 바라문이 아닌 자들은 바라문에 대한 복종과 존경을 강요받았다.
이러한 양태樣態를 부정하여 바라문의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바라문이 되거나, 혹은 바라문이 아닌 다른 계급을 부모로 태어났다고 해서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라문에 걸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바라문이 되고, 바라문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바라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선언宣言은 신분의 고리와 제약으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분이나 정체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와 가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이라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활용하고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에서는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갖고 있는 여섯 종류의 힘을 설명하면서 어린아이들은 울부짖는 것으로 힘을 삼고, 여인은 성내고 토라지는 것으로 힘을 삼으며, 국왕은 교만한 것으로 힘을 삼고, 사문은 인욕忍辱으로 힘을 삼아서 항상 하심下心하며, 아라한은 오로지 정진하는 것으로 힘을 삼고, 부처님은 대비大悲로 힘을 삼아서 널리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울어대고, 성내고, 교만하며 의시대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크게 비통해 하는 것 등은 모두 내면內面의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말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은 불편하거나 필요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크게 울어대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제쳐두고서 아이에게 달려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울어대는 것이야말로 아이가 갖고 있는 커다란 힘이며, 능력이며, 자신의 존재存在를 각인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을 때에, 혹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 어린아이는 울어대고 여인들은 토라지고 성을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성장하게 되면 필요하거나 불편한 것이 있을 때에는 그때그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어 더는 울지 않게 되고, 자존감과 자주성을 굳건히 확립함으로써 여인들도 토라지거나 성을 내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게 된다. 어린아이의 울음은 성장을 통해서 해결되고, 여인의 토라짐 역시 자존감과 자주성으로 벗어나게 되는 일이다.
만약 곤란한 처지에 놓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할 때에 울어대거나 막연한 대상을 향한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린아이거나 혹은 여인의 한계에서 헤매고 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
과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보자. 울어대고 분노하기 보다는 인욕으로 고통의 시간을 넘기거나 혹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나와 똑같은 혹은 나보다 더 심한 고통과 아픔을 겪었거나 치르고 있는 존재들에게로 시선을 확대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정체를 확립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인욕을 통한 하심과 존중으로 마침내는 곤경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사문의 수행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인욕의 수행에 연륜이 더해져서 인욕과 하심과 존중을 구별하거나 구분하지 않고 굳이 인욕하자고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집중하고 정진한다면 아라한의 경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자신의 고통과 아픔에만 침잠沈潛하지 않고 나의 경험을 발판으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고 달래주고 해결해 줌으로써 이롭게 해주고자 노력한다면 보살의 경지로까지 자신의 정체를 도약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아닌 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태생으로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인해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20여 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치러지게 된다더니, 총선에 앞서 공천과 경선으로 경쟁력 있는 인물과 적임자를 선정하는데 골몰하고 있지만, 당당하고 합당한 행위에 보다 주력하는 풍토를 기대한다.